■애니의 이론■

애니메이션에 대하여(6)-(지태호)

무구심 2019. 12. 20. 20:22

만화책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사례는 너무나 많습니다. 아시겠지만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산업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만화책 산업이 튼튼했기 때문이죠.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위해서 필요한 이야기나 캐릭터 또는 배경, 소품, 효과 등의 요소들이 모두 만화책 속에 고스란히 들어있습니다. 그렇지만 만화책 속의 각각의 장면들을 그대로 스토리보드로 사용하기엔 문제가 많습니다.

 

애니메이션은 기획단계에서 TV용, 극장용, 비디오용 등의 용도가 정해지고 그에 따라서 정확한 작품의 시간분량, 제작기간, 예산이 정해집니다. 이러한 제작 조건들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서 스토리보드가 필요합니다. 그 전체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한 컷씩 제작하는데 스토리보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만화책 속의 내용들이 빠지거나, 수정되거나, 추가되기도 합니다. 스토리보드에는 씬 번호, 화면구성, 대사, 시간, 시각효과, 사운드효과 등이 모두 정확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각 파트의 작업자들은 자기가 할 부분을 찾아서 그 부분만 작업하면 됩니다.

 

만화책은 불분명하고 모호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사소한 장면에서도 작업자에 따라서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작업자들의 혼란, 추가비용 발생, 제작기간 초과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게 됩니다.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캐릭터, 소품, 환경 등 작품 속의 모든 움직임들이 명확하게 제시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원화나 동화 등의 각 파트의 작업자들이 실수 없이 정확하게 작업을 할 수 있죠. 만화책에서는 구체적인 움직임들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가령 만화책에서는 캐릭터가 하품하는 장면을 단 한 장면으로도 나타낼 수 있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캐릭터가 하품하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입은 어떻게 움직이고, 눈은 어떻게 움직이고, 콧구멍은 또 어떻게 움직이고, 몸 동작은 또 어떻게 움직이고… 등 사실적인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서 정확한 동작분석을 바탕으로 많은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그리고 작품 전체에서 각 동작들이 어색하지 않게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손이 많이 가고 구성이 복잡해집니다.

 

캐나다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감독인 ‘프레데릭 벡’은 애니메이션 작업을 혼자서 하다가 한쪽 눈을 실명했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하죠. 한 사람이 구상하고 계획해서 그리기 때문에 작가가 의도한 데로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등의 장점은 있겠지만 그만큼 제작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효율적이라고는 볼 수는 없습니다.

 

상업애니메이션에서는 시간이 곧 돈과 직결됩니다. 한 작품을 제작하는데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린다면 모두 굶어 죽기 십상이죠. 그래서 레이아웃, 연출, 원화, 원작, 동화, 스캔, 컬러, 촬영, 편집 등 각 파트 별로 세분화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한 작품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제작하기 위해서 스토리보드, 타임시트, 모델집 등은 필수입니다.

 

결론은 개인작업인 경우에는 몰라도(그래도 역시 고생길이 훤히 보임) 여럿이 함께 만드는 공동작업일 경우에 만화책만 가지고는 곤란합니다. 그리고 자료의 종류가 많아지면 분실될 가능성이 많고 또 작품 속에 제대로 반영하기도 힘들어집니다.